여행 [온센링 입욕정보#3] 일본의 혼욕(混浴)문화 그리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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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센링(ONSENLING) 입욕지도사의 온천&입욕이야기 #3
일본의 혼욕문화 그리고 역사
온천대국 일본은 옛날부터 각지에서 온천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형용 단정해지고 두번 들어가면 만병이 통치되는 그래서 신탕이라고 불려왔습니다. 신탕이라는 말이 쓰인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은 온천의 효능을 신의 은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의 은총은 남여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남탕 여탕의 개념조차도 없고 혼욕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현대와 같이 벌거벗은 것이 부끄럽다고 하는 관념도 없었던 시대죠.
6세기경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스스로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을 부처님을 섬기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여 사원에서는 목욕을 활발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욕실’에서의 입욕의 첫시작입니다.
가마쿠라시대(1185년~1333년)에 들어와서는 승려들은 가난한 사람이나 환자를 포함한 서민들에게도 무료로 욕실을 개방해주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몸을 깨끗이 했습니다. 오닌의 난(전국시대의 서막)으로 쇼엔제도(장원제도)가 붕괴되면서 사원에서의 목욕도 유료화 되기 시작합니다. 점차 목욕문화가 에도 마을에도 퍼지면서 장사로 목욕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에도 성내에 제 1호의 목욕탕은 1590년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바람이 강하고 먼지가 많았던 에도에서는 목욕탕이 대붐이 되고 서민들의 일상에도 단숨에 녹아들었죠.
유나(湯女)의 등장과 혼욕
에도는 전국에서 모인 단기 부임의 무사나 건설에 종사하는 장인 등 주로 남성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에도시대 초기에는 여성이 극단적으로 적었다고 합니다. 그런 마을인 에도에서 큰 인기를 끈 것이 ‘’유나(湯女)’입니다. 유나는 목욕탕에서 손님의 머리를 감기거나 때를 밀어주는 여성을 말합니다. 그 일은 목욕 서비스 뿐만 아니라 술이나 식사의 접대, 춤공연 등 심지어 성 서비스까지도 행했다고 하죠. 그래서 한때는 요시와라(요시하라)라는 유곽까지 뒤흔드는 존재가 되었지만 그 후 1637년에 1개 시설에 대해 유녀 3명까지라는 제한이 있었고, 이를 지키지 않는 유나 목욕탕이 많았기 때문에 풍기문란을 문제 삼은 막부에 의해 1657년 유나가 있는 목욕은 금지되었습니다.
유나가 사라진 목욕탕에는 점점 여성 손님이 증가해갔습니다. 유야(湯屋)는 갑자기 욕조를 늘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또 다시 자연스럽게 혼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보니 목욕탕은 성별도 신분도 관계없이 함께 목욕할 수 있어서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혼욕이 된 목욕탕, 처음에는 남성과 여성을 나누었고 남녀는 몸을 가리는 것을 붙이고 있었지만 점차 알몸으로 들어가게 되며 넓지 않은 욕조에서 남녀가 알몸으로 뒤섞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리가 없지요. 치한은 물론 여성이 몸을 씻는 도구의 절도도 빈발했고 커플들 사이에서는 알몸으로 장난치는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흐트러진 풍기물란이 또 막부에도 전해져 1791년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의 간세이 개혁에 의해 혼욕이 전면 금지됩니다.
좀처럼 종식되지 않는 에도의 혼욕문화
그러나 에도시대의 법률은 ‘삼일법도’라고 말할만큼 서민들이 법률을 지키는 것은 고작 3일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혼욕은 좀처럼 종식되지 않고 또 영업을 하며 그 이후 금지와 영업이 반복되었습니다. 사실 목욕탕을 영업하는 입장에서 남자 전용·여자 전용으로 하거나, 남녀의 목욕 날짜를 나누면 아무래도 매출이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비지니스가 되지 않았겠죠. 거기서 생각된 것이 바로 욕조를 판자로 구분해 남탕 여탕을 구별하여 영업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남탕과 여탕으로 나뉘는데 칸막이가 워낙 허술해서 남자들은 쉽게 여탕에 침입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또 여탕에 여닫이문을 달아 남탕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가게가 인기였다고 합니다. 사실 이 혼욕을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던 것은 에도의 중심부 뿐이었습니다. 지방의 천연온천은 물론 목욕탕에서도 혼욕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좀처럼 종식되지 않았던 것 아닐까 합니다.
혼욕이 완전 폐지된 것은 메이지시대입니다. 메이지시대라고 하면 서양국가, 대표적으로 미국의 페리제독이 개항을 요구하며 일본에 들어와 목욕탕 입구에서 잠깐 본 혼욕 광경을 보고 ‘일본의 도덕심을 의심한다’며 비판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일본은 페리제독의 말에 의해 완전한 혼욕 폐지를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혼욕에 대한 법이 만들어지고 지금은 법적으로 혼욕시설을 만들 수 없다고 하니 옛보다 혼욕시설이 많이 줄었습니다만 아직까지 도심보다는 지방에가면 그 혼욕의 역사를 지켜내려오는 온천들이 있다고 하네요.
입욕지도사 한마디!
일본의 혼욕문화, 오래 전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일본의 고유한 문화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서에는 조금 맞지 않을 수 있겠지만 위와 같은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면 어느정도 받아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도쿄에서는 혼욕시설을 볼 수 없지만 지방에 가면 혼욕탕이 다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의외로 여성분들도 신체 부끄러움 없이 심지어 신체부위를 가리지 않고 혼탕에 들어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누구나 먼저 성적으로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만 일본 문화를 이해하고 온천을 알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혼욕온천을 즐길 수 있습니다. 부디 혼욕에 대한 이해를 통해 건전한 일본 온천문화를 체험하고 여행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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